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시간이라 부르는 뭔가가 빨리감기 한 필름 마냥 스쳐가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듯 했다.
비로소 정착했다고 안심한 곳이 허공이었구나 싶었다.
관광객 흉내를 냈다. 자기도 그곳에 들른 사람, 잠깐 쉬는 사람, 이제 막 먼 데서 돌아왔거나 떠날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선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과 그 인내가 무언가를 꼭 보상해주지 않는 다는 점
피로에 학살당한 것처럼 보였다.
자기가 모르는 삶과 역사가 있다는 걸 인정하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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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이기적이다. 강아지를 위해 돈을 모았지만 눈 바로 앞, 자기의 욕구에 합리화 해버리는 게 인간이다.
다음에, 다음에는 없다.
목적과는 다른 욕구에 굴복하고 가까운 욕구에 손을 뻗는 것이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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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에서 물이 새듯 미래에서 봄이 새고 있었다.
삼십대 중반이야말로 체력과 경력, 경제력이 조화를 이루는, 인생에서 가장 좋을때란 말을 자주 했지만 알고있었다. 나이먹으면 털빠지는 시기를 맞았다는 걸.
걱정을 가장한 흥미의 형태로,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의 방식으로 화제에 올랐을 터
헤어져도 잊어버리지는 않겠다는 듯
가장 힘들게 한 건 혼자 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일이었다.
말투와 표정, 화제가 변하는 걸, 그녀의 세계가 점점 커져가는 걸, 그 확장의 힘이 자신을 밀어내는 걸 감내하는 거였다.
과거가 될 만반의 자세, 만반의 준비를 하고. 그러곤 마음속으로 숫자를 센 뒤 사진기를 보고 웃었다.
우리가 뭘 모른다 할때 대체로 그건 뭘 잃어버리게 될지 모른다는 뜻과 같으니까
이쪽 세계도 저쪽 세상도 문득 생경해 누군가의 방에 잘못 들어온 기분이 든다.
만났기 보다 스쳤다
두 눈을 가린 사람이 손끝 감각에 의지해 사물의 이름을 알아 맞히듯, 그는 선물의 형식을 빌려 인생의 중요한 마디마디를 더듬고 기념하려 애썼다.
차창 너머 여름은 느긋했다. 푸르고 풍요롭고 축축해 보였다.
풍경이 더이상 풍경일 수 없을때, 나도 그 풍경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 순간 생긴 불안이었다.
어른이 별건가. 지가 좋아하지 않는 인간하고도 잘 지내는 게 어른이지.
호오가 아니라 의무지. 몫과 역을 해낸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사람 재는 자가 하나밖에 없는 치들은 답이 없어. 피곤해
눈 흘기는 척 침흘리는 인간을 조심해. 공정한 척 우아하게 비판하지만 몸살이 날 정도로 부러운 거지.
어느 화제든 상대의 진심도, 대가도 요구하지 않는 태도가 담백하고 노련했다.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늘 당신의 그런 영민함이랄까 재치에 반했지만 한편으론 당신이 무언가 가뿐하게 요약하고 판정할 때맏다 묘한 반발심을 느꼈다.
어느땐 그게 타인을 가장 쉬운 방식으로 이해하는, 한 개인의 역사와 무게, 맥락과 분투를 생략하는 너무 예쁜 합리성처럼 보여서. 이 답답하고 지루한 소도시에서 나부터가 가 합리성에 꽤 목말라 있으면서 그랬다.
온갖 평판과 해명, 친밀과 초조, 시기와 미소가 공존하는 사회와 이십사 시간 내내 연결돼 있는 듯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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